나의 FIFA 투쟁 기록

축구를 사랑하고 성원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지난 4년간 저는 국제축구연맹(FIFA)을 상대로 지리한 법정투쟁을 벌였고 금년 2월에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제가 그 동안 국제 축구 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이번에 러시아에 오니 많은 지인들이 지난 4년 동안 FIFA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길래 별일 없었다고 대답은 했지만 매번 구두로 설명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간략하게 그 과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는 결코 특정인물들을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 사실만을 정확히 전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4년 전, FIFA 윤리위원회(FEC)는 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허위사실에 기반한 인신공격, 계속되는 부당한 처리와 절차 지연으로 고통 받아야 했습니다. FEC가 의도한대로, 저는 이 일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FIFA와의 법정투쟁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오래 지속되었지만 제가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FEC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인내하고 버텨냈습니다.

FIFA윤리위의 조사와 그 이후의 제재 결정은 절차나 내용면에서 모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용문으로 표시된 문구는 대부분 CAS 결정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절차적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법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용납될 수 없을 정도로 지연되었습니다. CAS가 결정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CAS 중재위원들(Panel)이 합당하다고 여긴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자격 정지 상태로 있어야만 했는데,” 이것은 FIFA의 “지나치고 부당한 지연(excessive and unjustified delays)”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합당한(warranted)” 기간보다 13개월이나 더 제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CAS는 2018년 2월 결정에서 FIFA가 가한 5년의 제재 기간을 1년 3개월로 줄이면서 제재가 2017년1월7일로 이미 만료되었다고 밝혔습니다.

FEC 심판국장 한스 에커트와 FIFA 항소위원회의 위원장 래리 무센든은 이 같은 지연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CAS에 중재를 요청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결정 이유서(Reasoned Decision)”를 보내 달라고 이들에게 수 차례 편지로 요청했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늦게서야 결정 이유서를 보내줬습니다. 에커트와 무센든은 공개적으로 저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이들은 저에 대한 제재 결정을 먼저 통보하고, 7개월 후에나 결정 이유서를 보내왔습니다. 그 후 항소 결정 이유서는 9개월 후에나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재의 근거를 보내주는 데 도합 16개월이나 걸린 것입니다. CAS 중재위원들의 말대로  “비양심적인(unconscionable)” 처사였습니다. 이는 마치 판사가 사형선고를 내리고 이미 사형이 집행된 16개월 후에야 사형선고의 근거를 발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CAS 중재위원들은 결정문에서 “FIFA가 이 민감한 사안의 처리를 이렇게 오래 지체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플라티니와 블래터의 경우는 제 경우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들은 항소위원회의 결정 이후 약 일주일 만에 결정 이유서를 받았습니다. 블래터는 항소위원회 단계에 있을 때 결정 이유서를 불과 8일만에 받았습니다. 플라티니도 9 일만에 결정 이유서를 받았습니다. FIFA의 위원회는 자신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구입니다. 다만 제 경우만 의도적으로 예외로 삼았던 것입니다.

FIFA 내부가 정확히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달리 이해할 방법이 있을까요?

내용면에서 봤을 때도 FEC가 애초에 저에 대한 혐의를 제기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 1년 전인 2014년 3월 FIFA 윤리위의 보벨리 부위원장은 한승주 한국 월드컵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당신이나 당신의 팀에 대해 아무런 혐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 1월, 제가 FIFA 회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을 때, FEC는 저에게 FIFA의 윤리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한 “명백한(prima facie)”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사”라는 것이 시작되자마자 조사의 타깃이 저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7월, 저는 밴쿠버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갔습니다. 제가 7월 3일 금요일에 도착하자, 저보다 이틀 먼저 와 있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밴쿠버에 오기 전, 정회장이 FIFA의 부회장 한 명을 만났는데, 그 부회장이 말하기를 만약 제가 FIFA 회장 후보에 출마하면, FEC가 저를 저지하기 위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여부를 확인하려고 그 부회장을 만났는데, 그는 저에게 동일한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FIFA가 그렇게까지 정치적으로 부패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3주 후, 7월 24 일부터 26일까지, 저는 골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함재봉 박사도 동행했는데, 함박사는 CONCACAF(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를 대표하는 로펌의 변호사와 점심을 한 이후에 같은 이야기를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변호사 역시 제가 FIFA 회장 후보로 나오면, FEC가 저에게 제제를 가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함박사에게 말했습니다.

7월 30일, 로이터 통신의 서울 특파원은 함박사에게 전화해서 취리히에서 FIFA를 취재하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FEC가 제가 FIFA 회장에 출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제재를 가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는데 함박사가 이 부분을 확인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던 중 8월 1일, 제가 FIFA회장 선거를 위하여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날 Inside World Football에 저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체로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정 부회장은 앞으로 내려질 FEC 결정에서 몇 가지 윤리 규정 위반 문제에 직면할 것이고, 아마도 이 문제들이 정 부회장이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막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당시 언론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Inside World Football은 블래터의 전 특별 고문이었던 홍보 컨설턴트 피터 하지테이가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 보도는 “하지테이가 이제 제프 블래터가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스위스의 이상한 온라인 뉴스 매체 Inside World Football을 장악했다. 하지테이는 ‘Inside Insight’라는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때로는 매우 해로운 칼럼을 써대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블래터 자신도 2015년 1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윤리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모두 거기에 집어 넣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저의 평판을 깎아 내리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습니다. 블룸버그 뉴스와 같은 언론 매체에 제가 과거에 아이티의 지진 피해자들과 파키스탄의 홍수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한 것에 문제가 있어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허위 기사들이 실렸습니다. 2010년 지진으로 아이티에서는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15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홍수로 1000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2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피해 복구를 위해 저는 아이티에 20만 달러를 기부하였고, 파키스탄에도 20만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1990년대부터 저는 국내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해왔습니다. 제가 FIFA 부회장으로서 받은 연봉도 자선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러나 언론 보도들은 저의 기부를 뇌물인 양 몰아갔습니다. 이 보도들은 저를 흠집내기 위해서 “정치적인 의도”로 언론에 흘린 정보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FEC가 저에 대하여 제기한 소위 “윤리 규정 위반”은 ‘투표 담합(vote trading)’이나 ‘이익 제공(appearance of offering benefits)’과 같이 상당히 심각한 혐의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FEC는 “조사”의 일환으로 저에게 세 차례에 걸쳐 질문을 보냈습니다. 2014년 4월 14일에는 69개 항목, 2015년 2월 13일에는 50개 항목, 2015년 3월 17일에는 19개 항목의 질문을 보냈습니다. 2015년 2월 저에게 보낸 질문 중 하나는 “영국의 2018월드컵 유치위원장이었던 톰슨이 당신이 2018년 개최국으로 영국에 투표해주면 영국이 2022년 유치국으로 한국을 찍겠다고 ‘투표 담합’을 인정하였는데 톰슨의 진술로 사실이 밝혀져 당신은 놀라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FEC는 분명 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증거”를 가지고 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한 소위 ‘투표 담합’은 2010년 12월 1일, 제가 영국 집행위원 제프 톰슨과 함께 영국의 윌리엄 왕자의 초청으로 취리히의 보르 오 락(Baur Au Lac) 호텔에 있는 왕자의 스위트 룸을 찾아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날은 2018/2022 월드컵 개최지 결정 바로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제가 분명히 기억하기로, 그 호텔방에는 캐머런 영국 총리도 있었습니다.  주영 대사를 지낸 이홍구 전 총리도 함께 자리에 있었습니다.

요컨대, FEC의 주장은 제가 투표 하루 전날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영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톰슨과 ‘투표 담합’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FEC에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총리도 투표담합 혐의로 조사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더욱이, 마이클 가르시아 당시 윤리위원장과 톰슨 간의 대화록에 의하면, 톰슨은 저와 본인, 캐머런 총리가 ‘투표담함’에 합의했다고 주장한 바로 그 자리에 정작 윌리엄 왕자가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어처구니 없는 점은 이것입니다. FEC 조사국은 톰슨과 가르시아의 대화록을 첫 번째 질문 문항들에 대한 첨부 자료로 저한테 보내왔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투표 담합에 대해 반박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저에게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화록의 같은 부분을 인용하여, 톰슨의 기억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을 하자 그들은 제가 대화록을 어떻게 입수했느냐고 오히려 저에게 물어 왔습니다!

제가 영국과 투표 담합을 했다는 것이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입증할 또 다른 근거가 있습니다. 2010년 1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본부가 있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제레미 헌트 영국 문화부장관, 앤디 앤슨 영국 유치위원회 위원장, 폴 엘리엇 영국 대사, 톰슨 등으로 꾸려진 영국 월드컵 유치위원회 팀이 2018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공식적인 발표를 마친 뒤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영국 유치위원회 위원들에게 미국이나 호주와의 역사적, 정치적 유대 관계를 감안해서 영국은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한국보다는 미국이나 호주에 투표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주저 없이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이익 제공”에 대한 FIFA의 주장은 제가 한국 2022월드컵 유치위원회의 “국제축구기금(GFF)” 제안을 설명하는 편지를 동료 FIFA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2010년 10월 한승주 당시 한국 유치위원장은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축구기금(GFF)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편지에 쓴 내용은 이미 New York Times와 같은 언론사 보도를 통해 충분히 공개된 내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GFF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FIFA가 모든 유치 신청국에 요구하는 “축구 발전” 프로그램에 맞추어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1995년 한국이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할 당시에도 이러한 맥락에서, 월드컵 예상 수익 3억달러를 FIFA에 발전 기금으로 내놓을 것을 약속했던 바 있습니다.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자체만도 이미 충분한 영광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월드컵 경기를 통한 수익을 세계 축구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입니다.

영국의 2018월드컵 유치위는 ‘Football United’ 기금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재 FIFA가 축구 발전을 위해 쓰는 재정규모에 필적하는 새로운 기금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것이 당신의 대륙연맹에 의미하는 바를 상상해 보라.”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한 카타르는 “태국과 나이지리아의 축구 풀뿌리 및 영재 발굴 프로그램”,  “네팔과 파키스탄의 16개 학교에 축구를 통한 지원”,  “어려운 나라에 22개의 모듈화 스타디움 건설” 등을 제안했습니다. 영국의 기금 규모는 GFF의 몇 배는 됐을 것입니다. 카타르의 계획도 실현되면 물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투표 담합”이나 “이익 제공”을 입증할 아무런 단서도, 논리도 찾지 못하자 “투표 담합” 혐의는 조사국에서 철회되었고, “이익 제공” 혐의는 심판국에서 철회되었습니다. 이것은 FEC가 조사를 할 때 쓰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아무런 실체도 없이 일단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FEC는 애초부터 근거 없는 잘못된 주장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수사를 중단하고 사건을 일괄 종결하기는커녕 다른 지엽적인 문제들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FEC는 2010년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이익 제공’에 해당된다고 몰아가려다 실패하자, FIFA 편지용지를 사용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FIFA 부회장 자격으로 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편지를 쓴 것이 부적절했다는 것입니다.

FEC가 주장하는 것처럼, FIFA의 편지용지를 사용해 편지를 보낸다고 해서 FIFA가 자동으로 편지 내용을 “승인”하거나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블래터는 FIFA회장용 편지용지를 사용해서 수많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FIFA가 그 내용을 “승인”하거나 “보증”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FIFA 편지용지를 사용하여 생일, 휴가 및 여러 행사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은 집행위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는 관행입니다.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10월 4일에 저는 FIFA 편지용지를 사용하여 동료 집행위원들께 골프 라운드 중 “홀인원”을 기록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집행위원들은 나에게 축하 편지를 보내 왔는데, 그 중 일부 위원들은 공식 FIFA 편지용지를 사용했고, 일부는 대륙연맹의 공식 편지용지를 사용했습니다.

FEC는 별 효과가 없어 보이자, 이번엔 “조사” 과정에서 제가 절차 위반을 했다는 트집을 잡았습니다.

제가 블래터에게 조사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편지를 쓰자, FEC는 저에게 “비밀 준수” 위반으로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심판국은 결정 이유서에 “FIFA의 모든 임직원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회장에게 편지를 쓸 권리가 있다. (Every official of FIFA has the right to write to the President if he feels that there is a problem that needs to be addressed.)”라고 밝히면서도 제가 블래터에게 보낸 편지들을 문제 삼아 “조사”를 연장했습니다. 이후, CAS는 FEC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신청인(Appellant)은 자신이 보기에 부당하고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되는 절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저를 끌어내리기 위한 FEC의 허망한 시도는 계속 되었습니다. 저에 대해 당초 15년 제재를 구형했던 FEC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4년 제재를 추가 구형했습니다. 모두 19년 제재를 구형한 것입니다! 제가 FIFA회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윤리위원장 후보를 FIFA회장의 추천(nomination)이 아니라 독립된 별도의 위원회에서 추천토록 하자”는 제안을 선거홍보물에 게재했더니 윤리위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FEC의 주장처럼 “명예 훼손”에 해당된다면, 에커트 심판국장은 이 사안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되는 것이고, 결정에 참여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커트는 저의 제척 요청을 무시한 채 1심을 주재했습니다. FEC와 에커트는 공정한 사법 절차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FEC도 이처럼 터무니 없는 혐의들을 계속 우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비밀 준수 위반”과 “명예 훼손”혐의는 모두 취하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에 대한 조사가 “정치적 동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EC는 제가 조사에 “비협조적”(failure to cooperate)이었고, FEC에 답변을 늦게 보냈다면서 문제를 삼았습니다.

당시 저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치열한 경선과 본선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4월, 비극적인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304명의 희생자 중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국가적 비극 사태 속에서 개인적인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FEC가 보낸 69개의 매우 상세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한보다 15일 늦게 제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FEC는 답변이 늦었다는 이유로 저에게 5년의 제재를 가했습니다.

CAS는 결정문에서 “정 전 부회장이 서면 답변 기한을 약간 넘긴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이토록 중요한 절차를 지연시킨 FIFA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이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The pot cannot fairly call the kettle black, especially when it itself is blacker)”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잠시 악명 높은 ISL사건에 대해 말씀 드릴까 합니다. ISL사건은 FEC가 어떻게 고의적으로 FIFA내부의 노골적인 부패 사건을 덮으려고 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1997년, 블래터가 사무총장으로 있을 당시, 주앙 아벨란제 회장이 인터내셔널 스포츠 앤드 레저(ISL)로부터 월드컵 마케팅 권리와 TV 중계권 판매 권리를 부여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는데, 블래터는 이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ISL은 150만 스위스 프랑을 FIFA의 은행 계좌로 이체했고, 수신인은 아벨란제였습니다. 이것은 ISL측의 실수였습니다. ISL로부터 받은 뇌물인 이 돈은 FIFA사무 총장인 블래터가 아닌 아벨란제에게 직접 보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블래터는 이 뇌물을 신고하거나 조사를 시작하는 대신, 돈을 그저 ISL에 돌려주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ISL의 임박한 파산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래터는 FIFA 집행위원회에 이를 즉시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ISL의 파산이 FIFA재정에 미칠 영향의 정도와 범위를 축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1년 후인 1998년에, 블래터는 FIFA회장으로 출마하였고 아벨란제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되었습니다. 선거 당시 블래터 측의 선거부정에 대한 수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FEC는 언론보도와 스위스 사법당국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블래터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 사법당국은 2005년 FIFA 본부를 압수수색하고 ISL뇌물사건과 관련하여 계속하여 수사하였습니다. 수사 결과 블래터 사무총장이 ISL로부터 FIFA에 잘못 입금된 뇌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스위스 당국은 수사과정에서 아벨란제와 그의 사위, 테세이라 브라질 축구협회장이 1992년부터 2000년 사이에 ISL로부터 수천만 불의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아벨란제와 블래터 측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지만, 스위스 대법원은 2012년 이 문서들을 공개하도록 결정했습니다.

2013년, 스위스 사법당국의 수사가 종결된 지 1년 후에야 FEC는 마지못해 ISL 뇌물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FEC는 블래터가 “서툴렀다(clumsy)”는 결론을 내며, 부패에 대한 블래터의 책임을 면해주었습니다.

ISL의 엄청난 뇌물사건을 뻔뻔하게 덮으려 하는 FEC의 시도와 날조된 혐의와 사소한 문제로 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FEC의 모습은 너무도 확연하게 대비됩니다.

2015년 7월에 열린 미 상원 청문회에서, 리차드 블루멘탈 상원의원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이번 사건은 스포츠계에서 벌어진 마피아 스타일의 조직적인 범죄입니다. 다만 FIFA를 마피아에 비유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단 한가지 이유는 그런 비유는 오히려 마피아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피아도 이렇게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부패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2015년 9월, New York Times는 FEC에 대해서 “‘FIFA’와 ‘윤리(ethics)’라는 단어는 가장 큰 모순(oxymoron)”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5년의 제재를 받았다면 블래터는 얼마나 더 긴 제재를 받아 마땅할까요?

2017년 11월 공판 이후 CAS는 2018년 2월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문에서 CAS는 FIFA의 주장을 거의 다 기각하고, 저에 대해서 가해졌던 제재들이 “명백하게 그리고 극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evidently and grossly disproportionate)”이라고 밝혔습니다.  5년의 제재를 15개월로 줄였고, 이미 2017년 1월부로 저에 대한 제재가 종료되었다고 하였습니다. FIFA가 “비양심적으로” 저에게 부과한 벌금 5만 스위스 프랑도 취소했습니다.

FEC의 조사국이 저에게 19년의 제재를 부과하려고 했으나, CAS에 의해 15개월로 경감되었습니다. 물론 CAS는 제가 조사관들과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결정적인 문제(major infraction)”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FIFA의 태만과 지연 행동으로 저는 13개월이나 추가로 제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FIFA는 이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저에 대한 FIFA의 부당한 행위들은 블래터가 이끈 낡은 FIFA 속에서 자행된 것들입니다. 저는 FIFA가 블래터의 어두운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FIFA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과거의 FIFA 때문에 고통 받았던 저의 시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CAS가 진실을 밝혀낸 것을 저와 함께 기뻐해주시기 바랍니다.

낡은 FIFA때문에 고통 받았지만, FIFA에 대한 저의 존경과 애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고통의 기억들을 뒤로 접어두려 합니다.

제 사건을 보다 명확히 설명하려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6.21

정 몽 준

CAS, 정몽준 전 FIFA 부회장 제재 해제 (2018.02.10)

스위스 로잔의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9일(현지시간) 정몽준 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에 대한 FIFA의 제재를 해제하고 벌금 5만 스위스프랑(CHF)도 취소했다. 이에 따라 정 전 부회장은 국내 및 국제 축구 관련 활동을 즉시 재개할 수 있게 됐다.

CAS는 FIFA가 가한 5년의 제재 기간을 1년3개월로 감경하면서 제재는 2017년1월7일로 이미 만료되었다고 결정했다. CAS는 FIFA가 부당하게 절차를 늦추는 바람에 정 전 부회장이 일찍이 제재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 전부회장은 CAS가 FIFA의 기존 제재를 전면 취소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지난 4년간은 저의 명예와 자부심이 훼손된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FIFA가 다시 축구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단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FIFA 윤리위원회는 2022월드컵 유치과정에서 ‘투표 담합 (vote trading)’이나 ‘이익제공 (appearance of offering benefits)’과 같은 심각한 위반을 한 혐의(prima facie case)가 있다면서 2014년부터 조사를 시작했지만 이를 입증하지 못하자 이 혐의들은 모두 초기단계에서 철회했다.

그러나 FIFA는 주요 혐의를 적용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를 중단하기는커녕 한국의 국제축구기금(GFF) 공약에 관해 정 전 부회장이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조사과정에서 ‘비협조적’이었고 서면답변을 늦게 보냈다는 등의 이유로 5년의 제재를 확정했었다. FIFA는 또 CAS 항소에 필요한 결정 이유서를 늦게 송부함으로써 정 전 부회장이 제재 개시 후 1년6개월 이상 지난 시점에서야 CAS에 항소할 수 있도록 방해했다.

CAS는 결정문에서 “정 전부회장이 서면 답변 시간을 약간 지키지 못한 것은 FIFA가 훨씬 중요한 절차를 지연시킨 것에 비하면 무시할 만한 것”이라면서 “이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The pot cannot fairly call the kettle black, especially when it itself is blacker)”이라고 밝혔다.

CAS는 또 “FIFA가 가했던 제재는 명백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형평에 맞지 않는다(evidently and grossly disproportionate sanction originally imposed)”고 지적했다.

CAS는 정 전 부회장이 조사 과정중 블래터 회장에게 서한을 보낸 것을 FIFA가 문제 삼은 것에 대해서는 “정 전 부회장은 단지 불공정하고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된 조사라고 믿고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CAS는 “또 오래 전부터 FIFA 내부에서 정 전 부회장이 견지해왔던 반부패 입장과 십수년간 FIFA와 축구계에 기여한 공로”를 특별히 언급하면서 정 전 부회장이 부적절하게 조사에 반대하고 협조하지 않았다는 FIFA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CAS는 2022월드컵 유치과정에서 한국의 국제축구기금(GFF) 공약을 설명하기 위해 정 전 부회장이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두 문장이 공식 발표된 내용 이외의 것이어서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CAS는 “당시 정 전 부회장은 자신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CAS는 또 “정 전 부회장이 조사관들과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 전 부회장은 “FIFA 윤리위원회의 조사는 처음부터 저의 FIFA 회장 출마를 저지하고자 하는 블래터 전 FIFA회장의 공작이라는 사실을 일관되게 지적해왔다”면서 “FIFA가 불순한 동기에서 조사를 시작했고 관련 절차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는 저의 지적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CAS의 중재위원들이 그런 관점에서 검토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정 몽 준 전 FIFA 부회장실

CAS 제소, FIFA 개혁 계기 되길(2017.04.06)

국제축구연맹(FIFA)이 새로운 지도부 아래 개혁을 시도하고 있으나 FIFA의 윤리위원회(Ethics Committee)는 여전히 블래터의 ‘청부업자(hitmen)’를 자임하는 듯한 행태를 보여서 실망스럽습니다.

FIFA의 회장이 바뀌어서 FIFA가 다시 존경받는 국제기구로 변신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블래터가 심어둔 윤리위와 항소위의 주요 인사들을 보면 FIFA의 개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FIFA 제재에 대한 저의 대응은 개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축구를 사랑하고 FIFA 부회장을 17년을 지낸 사람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를 비롯한 모든 방안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FIFA 항소위원회(Appeal Committee)는 지난 3월 24일 저에게 항소 결정 설명문(reasoned decision)을 보내왔습니다. 지난해 7월, 항소위원회가 5년 제재 결정을 통보한 뒤 9개월 만입니다. 체육계의 최종 중재기구인 CAS에 제소하기 위해서는 이 설명문이 필요한데, 지난해 11월에는 제가 직접 편지를 써서 설명문을 빨리 보내달라고 촉구했음에도 FIFA 항소위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설명문을 주지 않다가 이제야 보냈습니다. 1심인 윤리위도 결정 설명문을 6개월이나 지난 뒤 보냈기 때문에 CAS에 제소하는 일은 제재가 발효된 날로부터 18개월 지난 뒤에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느 특정 피고인에 대해 사형을 집행케 한 재판부가 판결문을 18개월 뒤에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치졸한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블래터 전 FIFA회장과 플라티니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2015년 12월 1심 결정이 나온 이후 두 달여 만에 항소 결정 설명문까지 받아 CAS에 제소할 수 있었습니다.

FIFA 윤리위와 항소위는 ‘투표 담합(vote trading)’이나 ‘이익 제공(appearance of offering benefits)’이라는 혐의를 내세우며 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가 벽에 부딪히자 FIFA 편지용지를 사용했다느니,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문제로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윤리위와 항소위가 저에게 적용한 대표적 윤리규정은 13조의 ‘일반적인 행동 규범(general rules of conduct)’인데 이 조항은 윤리적 태도(ethical attitude)와 완벽한 신뢰(complete credibility) 같은 것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 규범과 윤리, 그리고 신뢰를 따지는 사람들이 왜 결정 설명문 하나 보내는 데 시간을 끌어서 결국 18개월이나 지난 뒤 CAS에 가게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서양 격언에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즉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듯이 이렇게 시간을 끈 것 자체가 비윤리적인 일입니다.

FIFA는 2015년 10월 1심에서 제재 6년을 결정했고, 2심인 항소위에서는 일부 저의 반론을 받아들였지만 1심과 비슷한 결론을 유지한 채 제재 5년을 결정했습니다.

FIFA 윤리위와 항소위는 처음에는 거창한 혐의를 내세워서 조사 또는 심리를 하다가 제가 반론을 제기하면 그것은 취하하면서도 다시 다른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워 제재를 강행했습니다. 제재는 기정사실화해 놓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형국입니다.

2015년 10월 FIFA 윤리위가 1심에서 어떠한 축구 관련 일에도 관여할 수 없도록 하는 제재 6년을 결정한 이후 저는 FIFA의 부당한 조치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법적 조치를 통해 FIFA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으나 이미 1년반의 시간이 흘러버렸고 CAS의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또 시간이 경과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저에게는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FIFA 구세력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이러한 노력이 FIFA의 새로운 출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994년 FIFA 부회장에 당선된 이후 저는 줄곧 FIFA 개혁을 요구했으나 블래터의 사람들에 의해 부당한 보복을 당했습니다. 블래터 회장의 ‘청부업자’라고 불리는 FIFA 윤리위는 당초 제기했던 혐의로 저를 얽어맬 수 없게 되자 ‘조사 비협조(violation of the duty of cooperation)’와 같은 조사 과정에서의 문제 등을 이유로 6년 제재를 가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도둑으로 몰더니 이에 항의하자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FIFA 윤리위는 블래터 회장이 사실상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블래터는 2015년 10월, 러시아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 사람들을 자리에 앉혔다. 그들이 현재 윤리위에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FIFA 윤리위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FIFA와 ‘윤리’라는 단어는 가장 모순(oxymoron)되는 관계”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7월 열린 미 상원 청문회에서 리차드 블루멘탈 상원의원은 “(FIFA는) 스포츠에 있어서 마피아식 범죄조직”이라면서 “마피아도 그렇게 뻔뻔하게 부패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에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게 마피아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FIFA의 부패를 파헤친 책, ‘파울(FOUL)’의 저자인 앤드류 제닝스 기자는 같은 청문회에서 FIFA 윤리위를 ‘블래터의 살인청부업자(hitmen)’라고 했습니다. 비자-마스터카드 사건을 담당했던 미국 법원의 로레타 프레스카 판사는 2006년 12월 판결문에서 FIFA가 거짓말을 했다는 표현을 13번이나 쓰고 “FIFA의 행동은 결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FIFA를 질타했습니다.

FIFA 윤리위는 이렇게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는 언론과 미 상원의원, 판사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도 못했습니다. 그들 말대로 독립적이고 떳떳하다면 전세계의 축구인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욕을 참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면 FIFA 윤리위는 FIFA의 부패를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내부 인사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보복을 하고 있습니다. 17년간 FIFA 부회장을 지냈고, 27년간 한국에서 국회의원을 한 저로서는 외부에는 약하고 내부에만 강한 FIFA 윤리위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년 전인 2015년, 미국과 스위스 사법당국이 월드컵 중계권 부정 판매 등과 관련해 FIFA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함에 따라 블래터가 회장직에서 사임했고, 곧이어 새로운 회장을 뽑기 위한 선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을 당시, FIFA 내부에서는 블래터가 자기 사람들로 구성된 윤리위를 통해 저의 FIFA 회장 출마를 막으려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습니다. 저도 세 명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FIFA의 현직 부회장 한 명과 한 대륙축구연맹의 법률고문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이 소문을 전해주었습니다. 유력한 언론사의 기자는 취리히의 FIFA 담당 기자들 사이에도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1994년 FIFA 부회장을 맡은 이후 17년간, 저는 불투명한 월드컵 중계권 판매 과정의 문제점, 그동안 아무도 모르고 있던 회장의 보수 공개, 비자카드에 특혜를 주기 위해 서류를 위조하고 거짓말을 했다가 기존 후원사이던 마스터카드에게 거액을 배상했던 사건에 대한 해명, 회계 감사를 위한 특별기구 구성 등 블래터가 듣기 싫어할 만한 지적과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FIFA 내부 인사들의 비판에 직면한 블래터는 2011년 4선에 도전하면서 마지막 임기가 될 것이라고 했으나 2015년 약속을 번복하고 다시 출마했습니다. 회장 선거를 앞둔 2015년 초, FIFA 윤리위는 때맞추어 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FIFA의 부패 척결과 투명성 확보를 외쳐온 저에 대한 블래터의 공격이었습니다. 소문대로 윤리위는 2015년 10월 초 저에 대한 제재를 결정했고, 저는 출마를 봉쇄당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되돌아보겠습니다.

2014년 3월, FIFA 윤리위의 보벨리 부위원장(현 위원장)은 한승주 전 한국 2022월드컵 유치위원장을 만나 “당신과 당신 팀에 대한 혐의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별첨 1) 그러나 FIFA회장 선거가 예정되어 있던 2015년에 들어서자마자 윤리위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사건(prima facie case)’이라면서 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별첨 2)

2014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윤리위 조사국은 제게 질문서를 세 번 보냈습니다. 2014년 4월 14일 69개, 2015년 2월 13일 50개, 2015년 3월 17일 19개의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들이 지나치게 사소하고도 반복적이었기 때문에 저는 당시 이미 윤리위가 무언가 꿍꿍이속이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질문들은 어떠한 트집이든 잡아 저를 엮어 넣기 위한 것임이 명백했습니다.

FIFA 윤리위가 내세운 혐의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2010년 있었던 2018년과 2022년의 월드컵 개최지 결정 과정에서 제가 영국(England)과 ‘투표 담합’을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22월드컵 유치를 위해 제가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에게 이익제공 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혐의는 2022월드컵을 신청한 한국과 2018월드컵을 신청한 영국이 서로에게 투표를 해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FIFA 윤리위는 영국의 톰슨 집행위원이 가르시아 윤리위원장과 했던 인터뷰에서 ‘투표 담합’을 인정했다고 하면서 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지만 제가 다음과 같이 톰슨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하자 취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투표 담합’이 이루어졌다던 날, 즉 개최지결정 투표 하루 전날, 잉글랜드 측의 요청에 따라 윌리엄 왕자의 호텔방에서 캐머런 총리, 톰슨 집행위원을 이홍구 전 총리와 함께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공개적 자리에서 윤리위가 주장하는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톰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총리도 조사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FIFA가 저에게 보낸 톰슨과 조사위와의 인터뷰 기록에 의하면 톰슨은 그 자리에 윌리엄 왕자가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앞서 FIFA는 개최지결정 투표를 앞두고 톰슨과 투표담합을 협의하기 위해 특정시점에 FIFA 본부가 있는 취리히에 간 적이 있느냐고 제게 질의를 해왔습니다. 여행기록을 찾아보니 FIFA 윤리위가 혐의를 두고 있었던 그 때 취리히에 간 사실이 없었습니다. 반박할 수 있는 이런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덫에 걸릴 뻔했습니다.

담합 자체도 없었지만 원천적으로 그런 논란이 있었다는 것이 블래터의 책임입니다. 월드컵은 원래 개최 6년 전에 개최지를 결정하는 것이 오래된 관례였습니다. 블래터가 2008년 느닷없이 이를 8년·12년 전에 그것도 두 개의 월드컵 개최지를 한꺼번에 결정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올림픽은 통상 개최 7년 전에 개최지를 결정합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갑자기 개최지를 2~3개 묶어서 15년 전에 결정하겠다고 하면 혼란과 비난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2010년에 월드컵 개최지 결정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면, 블래터 본인이 불을 질러놓고 “불이야” 하며 소리를 지르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FIFA 윤리위가 두 번째로 문제 삼았던 것은 2010년 제가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 2022월드컵 유치위의 공약을 설명한 일이었습니다. 2010년 10월 한승주 당시 한국 유치위원장은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축구기금(GFF)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이 내용은 많은 언론에 보도되어 공지의 사실이 되었고, 저는 나중에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이 공약을 상기시키기 위해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당시 FIFA는 제가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 보낸 것이 문제가 되는지의 여부를 검토했습니다. 상당한 조사 후에 발케 사무총장은 저와 한승주 전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는 유치과정의 정당성이 영향 받지 않았다고 보고 이 문제를 종결키로 했다”고 밝혔습니다.(별첨 3)

FIFA 윤리위는 제가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이익제공으로 보이는 행위(appearance of offering benefits)’를 금하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지만 정작 이 규정은 편지를 보냈던 시점인 2010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익제공으로 보이는 행위’라는 규정은 2012년 만들어진 윤리규정에 새로 들어간 내용입니다. FIFA는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의 동시 결정 이후 시비가 끊이지 않자 2012년에 새로운 윤리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이 새로운 규정을 근거로 법치의 기본인 소급적용 금지 원칙마저 위반해가면서 저를 얽어매려 했던 것입니다.

FIFA 윤리위 1심은 ‘이익제공’ 부분은 명백한 소급적용이어서 기각한다고 하면서도 그 대신 이번에는 편지 보낸 것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FIFA 집행위원으로서 한국의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활동한 것이 부적절했다면서 이를 핵심적인 제재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2010년 당시 발케 사무총장이 조사를 마친 뒤 저에게 서한을 보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던 일을 2012년 새로 만들어진 윤리위가 뒤늦게 문제 삼은 것입니다. 윤리위와 항소위의 주장대로 2012년부터 ‘독립적’ 윤리위가 만들어졌다면 그 이전에는 독립적 윤리위가 없었던 것이고 당연히 사무총장의 결론은 FIFA 전체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별첨 4) 따라서 이 사안을 다시 문제 삼는 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교묘한 사실상의 소급적용입니다.

요즈음은 사정이 어떤지 궁금하지만 2010년 당시에는 FIFA 집행위원들이 자국의 월드컵 유치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그것을 금지하는 규정도 없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제프 톰슨, 스페인의 앙겔 마리아 빌라, 벨기에의 미셀 두게, 카타르의 모하메드 빈 함맘, 일본의 준지 오구라, 러시아의 비탈리 무트코 집행위원 등은 모두 자국의 유치를 위해 열심히 공개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일본의 오구라 집행위원과 러시아의 무트코 집행위원은 심지어 투표 직전 자국의 프리젠테이션 때 직접 나와 자국 유치의 필요성과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앞으로 최대 3~4개국이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토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행위원회도 평의회로 바뀌면서 기존 24명에서 37명으로 인원이 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치를 희망하는 국가도 많아지고 평의회 의원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개최국 선정은 평의회가 3개 후보지를 추천한 뒤 총회가 최종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평의회 의원들은 FIFA 활동을 하면서 자국 유치를 위해 노력하게 될 가능성이 과거보다도 높아질 것입니다. 향후의 추세를 보아도 그렇고 2010년 당시의 상황을 보아도 집행위원이 자국 유치를 위해 노력한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FIFA 윤리위는 2010년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이익 제공’으로 몰아가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FIFA 편지용지를 사용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FIFA 부회장 자격으로 한국지지 요청 편지를 쓴 것이 부적절했다는 주장입니다.

저는 한국 유치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2022년 월드컵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이 한국의 이익 뿐 아니라 FIFA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쓰던 것과 마찬가지로 FIFA 용지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만약 FIFA 용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윤리위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시비를 걸었을 것입니다. 이미 한승주 한국 유치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고 언론보도를 통해 공지의 사실이 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편지를 쓰면서 편지용지까지 신경을 썼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윤리위와 항소위의 논리대로라면 FIFA 유니폼을 입고 한국 유치에 관해 얘기해도 안 되는 식이고, FIFA 건물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어도 안 된다는 식입니다. 같은 논리로 월드컵 경기 때 FIFA 집행위원석에 앉아서 한국팀을 응원하면 윤리규정 위반이 될 것입니다. FIFA의 초청으로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받았는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어느 특정팀을 응원한다면 명백한 윤리규정 위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윤리규정 위반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입니다. 뇌물을 준다든지 다른 불법적 제안을 한다면 형식이 어떻든 명백하게 윤리규정, 또는 법률의 위반이 될 것입니다. FIFA 윤리위와 항소위는 저를 얽어매기 위해서 옹색한 논리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제가 블래터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부당한 조사에 항의했는데, FIFA 윤리위는 이것도 문제 삼았습니다. 블래터에게 편지를 보낸 것 자체가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윤리위 외부에 공개한 것이어서 ‘비밀 준수(confidentiality)’ 의무 위반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또 윤리위와 상관없는 블래터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조사 중단을 요구한 것이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FIFA 윤리위가 1심 결정 설명문에서 “FIFA의 모든 임직원은 대처해야 할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회장에게 편지를 쓸 권리가 있다.(Every official of FIFA has the right to write to the President if he feels that there is a problem that needs to be addressed.)”고 밝혔듯이 FIFA 구성원이 내부 문제에 관해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별첨 5) 또 윤리위는 스스로가 블래터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블래터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이 사람들을 자리에 앉혔다. 그들이 현재 윤리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블래터가 이러한 윤리위를 이용해 저에게 보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블래터에게 보복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비밀 준수’ 의무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FIFA 윤리규정상 조사하는 주체는 비밀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지만 조사 받는 사람에게는 비밀 준수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조사 받는 사람은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FIFA 외부 인사들의 조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조사 사실을 공개해서 얻는 실익도 없습니다. 결국 ‘비밀 준수’ 위반 부분은 2심인 항소위에서 무혐의 처리 됐습니다.

그렇지만 FIFA 항소위는 ‘비밀 준수’ 부분을 기각한다고 하면서도 그 대신 블래터에게 쓴 편지의 내용을 문제 삼았습니다. 모든 FIFA 구성원은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회장에게 편지를 쓸 권리가 있다고 해놓고는 정작 ‘문제’를 지적하자 편지에 그런 내용을 담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모순입니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준다고 하면서도 다만 다른 의견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항소위는 제가 관련 조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치적 수단(political means)을 사용했다며 이것이 윤리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FIFA는 과연 어떤 조직인지 우리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기본적으로 FIFA는 정치적 기구입니다. FIFA 회장과 집행위원, 각국 협회장은 각각 선거라는 정치적 절차를 통해 선출됩니다. ‘정치적’이라는 수식어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FIFA 항소위가 말하는 ‘정치적 수단’은 부당한 압력이란 나쁜 뜻으로 쓴 것이지만, 정치적 기구인 FIFA의 책임자에게 정치적 보복으로 하는 조사를 중단하라고 하는 것이 ‘정치적 수단’을 의미한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FIFA 윤리위와 항소위는 저에 대한 혐의를 주장하다가 제가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해당 혐의를 취하하는 것처럼 하다가 다른 부차적인 이유를 혐의로 내세우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0년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이익 제공’이라고 했다가 제가 소급적용이라고 강력히 반론을 펴자 ‘이익 제공’은 취하하는 대신 FIFA 부회장 자격으로 한국의 공약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낸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했습니다.

블래터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FIFA 윤리위는 “FIFA의 모든 임직원은 대처해야 할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회장에게 편지를 쓸 권리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 내용과 숨은 의도는 문제가 된다.”고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제재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이런저런 이유를 찾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제가 FIFA회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윤리위원장 후보를 FIFA회장의 추천(nomination)이 아니라 독립된 별도의 위원회에서 추천토록 하자”는 제안을 선거홍보물에 게재했더니 윤리위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가 덧붙여졌습니다. 윤리위는 독립적인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저에 대해 당초 15년 제재를 구형했던 윤리위 조사국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4년 제재를 추가 구형했습니다. 모두 19년 제재를 구형한 것입니다. 윤리위가 그처럼 독립적이라면 “내가 이 사람들을 자리에 앉혔다. 그들이 현재 윤리위에 있다”고 한 블래터야말로 명예훼손으로 바로 조사하고 징계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거과정의 당연한 정책제안마저 저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삼는 FIFA 윤리위의 행태는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의 말대로 ‘뻔뻔하게 대놓고 하는 오만한(blatant, overt, arrogant)’ 것입니다.

윤리위는 1심에서 이해 당사자는 재판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당사자 제척 원칙도 무시했습니다. 윤리위는 “윤리위원장 후보를 독립된 별도의 위원회에서 추천하도록 하자”는 저의 당연한 정책제안을 윤리위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면서 혐의에 추가했습니다. 그렇다면 공동윤리위원장인 심판국장은 이 사안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심판국장은 저의 제척 요청을 무시한 채 1심을 주재했습니다. 사법절차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1심은 근본적으로 무효입니다. 항소위는 자신들이 보아도 지나치게 무리한 적용이라고 판단한 모양인지 뒤늦게 ‘명예훼손’ 부분은 무혐의 처리했습니다만, 명예훼손만이 아니라 1심 자체가 무효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FIFA 윤리위와 항소위는 조사 받는 사람과 조사하는 사람이 동등한 정보접근권을 갖는다는 FIFA 윤리규정 39조를 지키지 않고 윤리위가 보고 있는 자료를 같이 보게 해달라는 저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윤리위는 제가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문제 삼으면서 그 근거로 블래터와 발케 당시 사무총장이 2014년 4월 윤리위 조사관과 했던 인터뷰를 내세웠습니다.

발케는 2010년 11월, 편지 문제에 대해 내부 검토를 마친 뒤 저와 한승주 유치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유치과정의 정당성이 영향 받지 않았다고 보고 이(편지) 문제를 종결하기로 했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인터뷰에서 그런 편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면서 저를 비난했습니다. 저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인터뷰 녹취록 전체를 보내줄 것을 윤리위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FIFA 윤리위와 항소위는 조사과정의 비협조를 제재 결정의 또 다른 근거로 들고 있으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일 뿐 아니라 사실과도 합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FIFA 윤리위는 제가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2014년 초, 조사를 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출마선언과 당내 경선 준비, 그리고 실제 선거 운동 등 중요한 일들이 산적했기 때문에 FIFA 윤리위 인사와 장시간 인터뷰하기 위해 사전에 그 일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선거만큼이나 중요한 서울시장 선거의 특성상 1주일 앞의 일정도 미리 계획하는 것이 쉽지 않은 급박한 상황이 많았습니다. 몇 차례 서로 편리한 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두 달 정도 앞둔 4월, 직접 인터뷰 대신 서면답변을 보내달라고 FIFA가 요청해옴에 따라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저로서는 FIFA 조사에 최대한 성실하게 협조했으나 FIFA 윤리위와 항소위가 이러한 전체적인 상황을 무시한 채 결론에 짜 맞추기 위한 주장을 펴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FIFA 윤리위는 2015년 10월초 열린 1심에서, 당초 제기했던 ‘투표 담합(vote trading)’이나 ‘이익 제공(offering benefits)’ 등의 혐의가 아니라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not in line with an ethical attitude and with credibility and integrity)’과 같은 모호한 규정과 절차적 문제들을 근거로 제재 6년을 결정했습니다.

FIFA 항소위원회는 2016년 7월 초, ‘비밀 준수’ 위반과 명예훼손 부분만 저의 입장을 받아들여 무혐의로 인정한 채 1심과 비슷한 제재 5년을 가했습니다. 그리고는 결정 설명문을 보내는 데 9개월을 흘려보낸 것입니다. 항소위원장은 블래터 시절에 선임된 인사입니다.

FIFA 제재에 대한 저의 대응은 1994년 이래 지속되어온 FIFA 개혁을 위한 외로운 투쟁의 연장입니다. 블래터는 도덕적 비난 정도가 아니라 형사 범죄에 해당하는 수준의 부패를 저질렀습니다. 블래터는 사무총장 시절이던 1990년대, 월드컵 중계권을 갖고 있던 ISL로부터 아벨란제 회장이 뇌물을 받은 것을 알고도 눈감아주었습니다. 블래터는 또 비자카드에게 후원사 선정 혜택을 주기 위해 기존 후원사인 마스터카드를 속이고 서류를 위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FIFA는 마스터카드에 6천만 달러를 배상했습니다. 2011년 FIFA 회장 선거 때, 블래터가 자신을 지지해주는 대가로 플라티니 전 UEFA 회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에 대해서도 사법당국이 수사를 했습니다.

FIFA 윤리위는 블래터의 비리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이 오랜 기간 수사를 하고 언론이 보도를 해도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 사법당국은 2005년 ISL 뇌물 사건과 관련해 FIFA 본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벌였습니다. 앤드류 제닝스 기자는 저서 ‘파울’을 통해 1998년 당시 블래터 사무총장이 ISL로부터 FIFA에 잘못 입금된 뇌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FIFA는 수사과정에서 아벨란제와 그의 사위였던 테이세이라 전 브라질 축구협회장이 1990년대 ISL로부터 수백억 원의 뇌물을 받아왔다는 내용의 문서를 사법당국에 제출했고, 아벨란제 측의 집요한 방해전략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대법원은 2012년 이 문서를 공개토록 했습니다. FIFA 윤리위는 이로부터 1년 후인 2013년에야 마지못해 ISL 뇌물 사건을 조사한 뒤 “블래터가 어설프게 처리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사실상 아벨란제의 공범인 블래터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저에 대해서는 톰슨 영국 집행위원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근거로 신속하게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부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켜보니 FIFA 집행위원 가운데 블래터를 존경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경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축구대회를 유치하거나 지원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권력을 갖고 있는 블래터를 두려워했을 뿐입니다.

블래터는 회장 취임 후 월드컵을 2년에 한 번 열자,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서 골대를 넓히자는 등 이상한 제안을 많이 했다가 저를 비롯한 집행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저는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앞두고 당시 아벨란제 회장과 블래터 사무총장이 이미 일본으로 기운 상황에서 이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보장을 요구했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FIFA의 투명한 운영을 촉구했습니다.

FIFA의 회장이 바뀌었지만 블래터가 심어둔 윤리위와 항소위의 주요 인사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블래터의 시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CAS 제소를 비롯한 모든 방안을 찾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꾸민 블래터 전 회장과 거짓말로 저를 모함하는 등으로 저의 부당한 징계에 관련된 인사들에게 형사 고소· 고발과 손해배상청구 등 응분의 법적 책임도 물을 것입니다.

FIFA의 부패 구조를 청산하고 진정한 개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판티노 회장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FIFA가 진정한 개혁을 통해 전세계 축구팬의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축구팬과 언론인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2017년 4월 6일

정 몽 준

[별첨자료] 정몽준 전 FIFA부회장 기자회견

[참고자료] 정몽준 전 FIFA부회장 기자회견

FIFA 개혁과 명예회복 위한 노력 계속할 것

저에 대한 FIFA 소청위원회 (Appeals Committee)의 5년 제재 결정은 실망스럽다.

FIFA 윤리위원회의 심판국은 2015년 10월 저에 대한 1년여에 걸친 조사 끝에 6년간의 제재를 결정한 바 있다. 이번 결정은 이에 대한 항소의 결과다.

FIFA 윤리위원회의 조사국이 저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이유는 2018/202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과정에서 ‘투표담합’ (vote-trading)을 했으며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국제축구기금’ 조성 공약과 관련한 편지를 보냄으로써 ’이익제공으로 보이는 행동‘ (appearance of offering of benefit)을 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이 두 혐의는 정작 윤리위원회의 결정 발표시 제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제재를 가한 근거는 조사 과정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기밀을 누설’했고 ‘태도가 비윤리적이었다’는 그들의 일방적이고 모호한 주장 때문이다. 근거 없는 혐의로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 이 과정에서 결백을 주장하고 윤리위원회의 공격에 논리적으로 대응한 것이 ‘비협조적’(failure to cooperate)이었고 ‘비윤리적인 태도’(unethical attitude)였다는 주장이다. 본질적인 규정위반은 모두 빠지고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한 절차상의 규정위반만 남았다.

이번 소청위 결정에서는 ‘기밀 누설’에 대한 혐의마저 스스로 뺐다. 이제 남은 것은 조사에 대한 ‘비협조’와 ‘비윤리적인 태도’다.

저는 FIFA 윤리위의 조사 초기부터 이 모든 절차가 저의 FIFA 내 활동을 저지하고자 하는 FIFA 내부 특정세력의 비윤리적인 공작에 불과했음을 일관되게 지적해왔다. FIFA의 수뇌부는 저를 늘 눈엣가시처럼 여긴 것으로 생각된다. 저는 1994년 FIFA 부회장 부임 직후부터 FIFA 내부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1995년의 한 국제회의 연설에서 불투명한 FIFA의 TV 방영권 결정과정에 대해 아벨란제 당시 회장을 비판하였고 2002년 ISL 부정사건, 2006년 VISA-MasterCard 사건 등에 대한 블래터 회장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당시 뉴욕 지방 법원 프레스카 판사는 이미 2006년 12월 VISA-MasterCard 판결문에서 FIFA가 ‘거짓말을 했다’ (FIFA lied)라는 말을 13차례나 언급하였고 FIFA의 행태는 당시 FIFA의 구호였던 ‘페어플레이 정신’을 ‘철저히 어기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저는 또한 블래터 회장의 연봉을 공개할 것을 공식 요구한 바도 있다.

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이후 블래터 전 회장의 FIFA가 얼마나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조직이었는지는 미국과 스위스 정부의 공식적인 수사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2015년 미국 상원의 FIFA 부패 관련 청문회에서 블루멘털 상원의원은 “지금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이번 사건은 스포츠계에서 발생한 마피아 스타일의 조직적인 범죄이다. FIFA를 마피아에 비유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단 한가지 이유는 그런 비유가 마피아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피아도 이렇게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부패를 저지르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FIFA에 최소한의 명예가 남아있었다면 FIFA는 이토록 극단적으로 자신을 비판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꼼짝도 못하면서 저의 경우에는 내부인사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었다면서 제재를 가했었다.

저를 조사한 FIFA 윤리위원회내의 조사국과 심판국이 과연 자신들의 주장만큼 독립적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FIFA에서는 블래터가 윤리위원회의 주요인사를 추천하면 총회가 형식적으로 추인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단 한번도 블래터가 지명한 인사가 거부된 적이 없다. 블래터 자신도 인터뷰에서 “지금 윤리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다 거기에 집어 넣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NY Daily, October 28, 2015). 저는 독립된 ‘윤리위원장 추천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면서 윤리위의 독립성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 윤리위원회의 ‘명예를 훼손’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나 형평성의 원칙으로 볼 때 윤리위원회는 블래터 전회장도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마땅하다.

윤리위원회의 심판국장은 제가 윤리위원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면서도 심판국장으로서 자신을 제척하는 대신 제 사건에 대한 판결을 진행하였다. 자신이 연루된 사안에 재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법 상식마저 저버린 행위였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것은 FIFA가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제도와 관행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면 이러한 결정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저에 대한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일은 저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FIFA의 변화와 개혁에 일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CAS) 에 항소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법적인 조치를 강구하겠다.

 

2016.7.6

정 몽 준

FIFA 개혁을 기대하며

 
신임 회장의 당선을 축하합니다.

신임회장이 아벨란제-블래터의 체제를 청산하고 FIFA의 근본적인 개혁을 이뤄내기를 기대합니다.

신임 회장의 당선을 계기로 FIFA가 명예를 회복하고 많은 축구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게되기를 바랍니다.
 

2016. 2. 26.

정 몽 준

FIFA, 어떻게 해야 하나?

 

*본 글은 12.18(금) 게재된 글의 수정본입니다.

 
2015년은 국제축구연맹(FIFA)에게 치욕의 해였다. 축구를 ‘희망과 영감(hope and inspiration)’의 문으로 생각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은 좌절했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도 여러 가지로 의미 깊은 한 해였다.

FIFA는 지난 수 십년 간 돈과 자리, 경기개최지 선정을 통제하면서 권력을 움켜쥔 몇몇 인사들이 운영하는 폐쇄된 시스템 속에서 심하게 부패해왔다. 나는 FIFA부회장으로서 1994년부터 17년간 투명한 운영을 요구하면서 아벨란제와 블래터 체제에 맞섰다. 이번에 다시 한 번 FIFA 개혁을 시도해보았으나 블래터와 그의 추종 세력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지난 5월 미국과 스위스 사법기관의 수사로 노출된 FIFA의 부패상은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내가 수 없이 지적하고 비판하고 경고했던 바로 그 부패상이 이제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록 기존의 체제를 만든 블래터와 그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플라티니도 징계를 당하고 수많은 집행위원과 간부들이 체포됐지만 과연 FIFA가 투명하고 깨끗한 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역설적인 것은 블래터의 수하에 있으면서 FIFA의 노골적인 부패는 방치하는 한편 나와 같이 블래터 체제에 맞서던 사람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제재하던 FIFA의 윤리위가 뒤늦게 ‘깨끗한 손’인 것처럼 블래터 징계를 운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FIFA 윤리위 같은 조직과 이를 운영하는 위선적 인물들이 존재하는 한 FIFA의 진정한 개혁은 어렵다.

미국 상원청문회에서 블래터의 ‘청부업자’라고 불렸던 윤리위는 지난 1월 나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실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었다. FIFA 윤리위는 지난해 3월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유치과정과 관련해 관련국에 대한 전반적인 예비조사를 벌이면서 한승주 전 유치위원장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보벨리 당시 윤리위 부위원장은 한승주 전 위원장에게 “한국팀에 대한 혐의는 없다”고 밝혔었다.

윤리위는 지난 1월20일 느닷없이 나에 대한 공식 조사를 개시한다고 통보했다. 윤리위 조사국은 3차례 서면조사를 했는데, 지난해 4월14일에는 69개 항목, 지난 2월13일에는 50개 항목, 5월17일에는 19개 항목의 질문을 보냈다. 사소한 내용의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져서 고문수준으로 괴롭히는 것을 보고, 처음부터 윤리위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했다. 많은 질문들이 부적절하면서 넌지시 의도를 드러냈고 때론 불쾌감을 주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윤리위는 내가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 때 어느 나라에 투표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나는 개최지 투표는 비밀투표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개하라고 하는 것은 규정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윤리위의 질문들은 기본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었다.

윤리위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혐의를 내세웠다. 내가 영국 집행위원과 ‘투표담합’을 했고,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국제축구기금(GFF)에 관한 편지를 보내 ’이익제공으로 보이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2010년 월드컵 개최지 투표 당시 영국 집행위원이었던 제프 톰슨은 지난해 12월, 나와 ‘투표담합’을 했었다고 주장했다. 윤리위는 아마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리위는 마이클 가르시아 당시 윤리위원장과 톰슨 간의 대화록을 내게 보내면서 “영국의 2018월드컵 유치위원장이었던 톰슨이 ‘투표담합’을 인정한 사실을 알고 놀랐는가?”라고 물었다. 톰슨은 투표 하루 전인 2010년 12월1일, 윌리엄 왕자의 초청으로 윌리엄 왕자의 호텔 스위트룸을 찾아가 함께 만난 자리에서 ‘투표담함’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캐머런 영국 총리와 주영대사를 지낸 이홍구 전 총리도 참석했다. 하지만 대화록에 의하면, 톰슨은 자신과 나, 그리고 캐머런 총리가 ‘투표담함’에 합의했다고 주장한 바로 그 자리에 정작 윌리엄 왕자가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윤리위에 톰슨과 내가 이런 상황에서 불법적인 ‘투표담합’을 하는 것이 생각할 수나 있는 일이냐고 되물었다. 또 윤리위가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총리를 투표 하루 전 ‘투표담합’에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는지, 그렇다면 두 사람을 조사할 것인지도 물었다.

이런 세부적인 모순을 지적하자 윤리위 조사국은 내게 다시 편지를 보내 대화록-자신들이 보냈던-을 어떻게 입수했느냐고 물었다. 윤리위의 무능과 무리함에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윤리위는 이 부분은 취하했다. 자신들도 이 혐의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이익제공으로 보이는 행위’란 한국 2022월드컵 유치위원회의 국제축구기금(GFF) 제안을 설명하는 편지를 내가 동료 FIFA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것을 말한다. GFF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FIFA가 모든 유치 신청국에 요구하는 축구발전 프로그램에 맞추어 제안한 것이었다.

가령, 영국 2018월드컵 유치위원회는 ‘축구연합기금’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현재 FIFA가 축구발전을 위해 쓰는 규모에 필적하는 새로운 기금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것이 당신의 대륙연맹에 의미하는 바를 상상해보라” 영국의 설명대로라면 ‘축구연합기금’의 규모는 한국 GFF의 10배가 넘었을 것이다.

카타르는 2022월드컵 유치를 신청하면서 “태국과 나이지리아의 풀뿌리 축구 및 인재 스카우트 프로그램” “네팔과 파키스탄의 16개 학교를 축구를 통해 지원” “어려운 나라를 위한 22개 모듈식 스타디엄의 건설” 등을 제안했다.

윤리위 조사에 대한 결정타는 제롬 발케 사무총장이 2010년 GFF와 관련해 내게 보낸 편지였다. 이미 당시 FIFA는 이 ‘사안’을 살펴보고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발케 사무총장은 나와 한승주 한국유치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유치활동 과정에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이 사안은 종료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통보한다”고 밝혔다.

두 가지 사안 모두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윤리위는 조사과정의 절차를 위반했다는 식으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윤리위는 지난 6월5일자 편지에서 ‘비밀유지’ 위반으로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통지했다. 내가 블래터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조사에 강력히 항의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사실 이 편지는 블래터 회장이 조사과정에 부당한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블래터 회장은 나의 사신에 대답하지 않고 편지를 윤리위에 넘겨버렸다. 그러자 윤리위는 이 편지들을 조사 확대에 활용한 것이다. 만약 블래터 회장이 정말 어떤 식으로든 조사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편지를 그냥 갖고 있든지, 스스로든 아니면 개인 변호사를 통해서든 답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밀유지’란 일반적으로 피소당한 쪽에 부과되는 의무가 아닐 뿐 아니라 FIFA 윤리규정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피소당한 사람은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관련자들로부터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무엇보다 피소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조사 사실이 널리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다.

피소당한 사람이 공모자와 정보를 교류해서 조사를 방해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한다면 ‘비밀유지’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리위 조사국이 블래터 회장을 나의 공모자로 간주했을 리는 없다. 내가 편지를 쓴 유일한 이유는 FIFA의 법적 대표인 블래터 회장에게 조사가 지나치고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지난 8월부터는 윤리위에서 조사에 관한 정보가 언론에 유출되기 시작했다. 어느 기사는 내가 과거에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아이티와 파키스탄에 기부한 것 때문에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 유출이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조사받은 적이 없다. 이들은 전세계에 걸쳐 벌였던 자선활동까지도 정치적으로 채색하려 한 것이다. 어느 언론은 나에 대한 제재 기간, 제재 발표 날짜까지 특정해서 보도했다. 이런 언론보도들은 ‘FIFA 집행위와 윤리위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나에 대한 평판을 흠집내려는 이런 비열한 작업에 항의하자, 윤리위는 오히려 자신들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면서 나를 비난했다.

윤리위는 지난 9월, 내가 자신들의 독립성을 해치는 주장을 했다면서 다시 한 번 조사를 연장한다고 통보했다. 지난 8월 FIFA 회장 출마선언을 하면서 배포했던 브로셔에 “윤리위의 책임자는 지금처럼 회장이 추천하지 말고 독립된 추천위원회가 추천해야 한다”고 표현한 부분 등을 문제 삼았다. 윤리위가 독립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자 아픈 곳이 찔렸다고 생각한 듯 했다.

윤리위는 자신들이 총회의 승인을 받기 때문에 블래터 회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윤리위원장을 추천하는 사람이 블래터 회장이었고 총회는 한 번도 블래터 회장의 추천을 거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윤리위는 지난 7월 말, 조사를 종료하고 나를 심판국에 회부하면서 15년 자격정지를 구형했다. 이후 윤리위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를 붙여 다시 4년 구형을 추가했다.

윤리위는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하는 사건을 다루면서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판결을 내렸다. 윤리위는 사건의 당사자인 에커트 심판국장을 제척해달라는 요청을 5일간의 신청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정한 사법절차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윤리위는 지난 10월8일 나에 대해 ‘조사 비협조’ ‘윤리위 명예 훼손’ 등을 이유로 자격정지 6년을 선고했다. 원래 조사의 쟁점이었던 ‘투표담합’이나 GFF 관련 혐의의 실체를 찾지 못하자, 조사 과정에서 절차적 위반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제재를 가한 것이다.

윤리위가 1년여에 걸쳐 끝도 없는 질문 공세로 나를 괴롭힌 이유는 제재를 위한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이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조사과정에서 나를 얽어매기 위한 사소한 절차적 사안이었다. 해외 언론에 의해 ‘전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조직중 하나’로 표현되었던 FIFA가, 조사가 개시되지 않았더라면 있지도 않았을 절차적 문제를 빌미로 나를 제재한 것이다. 그야말로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는’ 격이다.

지난 7월 초부터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만났던 FIFA내의 동료들이 윤리위가 나의 회장 출마를 막기 위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는데, 모두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윤리위는 나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 날, 부정한 돈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던 블래터와 플라티니에 대해서는 90일 잠정 제재를 결정했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사안과 동시에 발표함으로써 윤리위는 나에 대한 제재의 부당성을 감추었다.

블래터 회장과 플라티니는 결국 각각 8년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결정은 현저하게 불공평한 것이다. 뇌물성 금품 수수라는 부패행위와 윤리위의 문제점을 지적한 행위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형평성과 균형감각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뉴욕타임즈가 FIFA와 윤리위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라고 갈파한 것이다.

그동안 FIFA가 스포츠 마케팅 회사 ISL의 뇌물사건, 비자카드와의 부당한 후원사 계약 등 숱한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도 윤리위는 수수방관했다. 어쩔 수 없이 ISL 사건에 대해 조사를 했을 때도 고작 블래터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준이었다. 비자-마스터카드 후원사 선정 관련 스캔들에 대해서는 조사는 커녕 아직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FIFA 개혁의 대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사권자였던 블래터가 어렵게 되자 그동안 언론에서 수 없이 지적했던 사안들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블래터를 비판했던 사람들은 괘씸죄로 처리하고, 블래터와 그 측근들에 대해선 은혜를 배신으로 갚으면서 가증스러운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윤리위는 나에 대한 제재 결정 이후 외부의 심판기관인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는 것을 교묘하게 막고 있다. CAS 제소를 위해서는 FIFA내 항소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하는데 항소의 필수 요건인 판결문(reasoned decision)을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보내지 않고 있다. 공정한 법질서는 물론 기본적인 상식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블래터의 그늘에서 권력의 맛을 즐기다 이제는 숙주였던 블래터를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FIFA의 근본적 개혁은 요원하다. 극악무도한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던 수사기관이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에 마치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활개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윤리위의 방해로 차기 FIFA 회장 선거에 나갈 수는 없게 되었지만 내게 금년은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레나트 요한슨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카렌 하우스 전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등 많은 분들이 FIFA의 부패를 함께 걱정하고 개혁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FIFA의 부패를 파헤친 앤드류 제닝스, 랍 휴즈와 같은 훌륭한 언론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행복한 기억이다. 병중에 있는 앤드류 제닝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지금의 FIFA 체제와 인물로는 FIFA 개혁이 쉽지 않지만 아직 절망하기는 이르다.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아직 미래가 있다. 내년에는 축구라는 단어가 다시 ‘희망과 영감’으로 읽힐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15.12. 30.

정 몽 준

FIFA 회장 선거에서 물러나며

지난 1년 반 동안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의 이른바 ‘조사’를 받으면서 많이 시달렸다. 차기 FIFA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저에 대한 윤리위의 시비 걸기는 더 심해졌다. 금년 7월 하순, 주요 언론들이 저의 출마 가능성을 보도한 직후 윤리위의 조사국은 검찰 기소에 해당하는 심판국 회부를 결정했다. 15년 제재 요청과 함께였다. 얼마 후 윤리위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4년 제재 요청이 더해졌다.

이제 윤리위의 부당한 조치로 인해 후보 등록 마감일일 10월26일을 넘기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철회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번 회장 선거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할 일은 있을 것 같다. 후보가 아닌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FIFA에 대해 고언을 더 많이 할 것이다.

FIFA 윤리위는 서울시장 선거로 한창 바쁘던 지난 해 3월 경부터 조사를 하겠다면서 끊임없이 괴롭혔다. 선거 와중인 5월 서면조사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이후 가르시아 윤리위원장이 작성한 종합 보고서는 “한국의 유치과정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FIFA 윤리위는 금년 1월20일 느닷없이 공식 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지난해 12월 영국의 톰슨 집행위원이 저와 투표담합(vote trading)을 했다고 주장하자 결정적 약점을 찾아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윤리위는 가르시아 위원장과 톰슨의 대화록을 보내면서 내게 “깜짝 놀랐느냐?”고 물었다. 톰슨은 2022월드컵 개최지 결정 투표일 하루 전인 2010년 12월1일 영국 윌리엄 왕자의 요청으로 왕자의 스위트 룸에서 캐머런 영국 총리, 톰슨, 그리고 우리 측에서는 저와 이홍구 전 총리가 참석했던 모임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톰슨은 윌리엄 왕자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만약 이 자리에서 투표담합이 이루어졌다면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총리도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불법 행위를 은밀하게 논의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박하자 윤리위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취하했다.

윤리위가 또 문제 삼았던 부분은 한국 유치위가 발표했던 국제축구기금(Global Football Fund : GFF)에 관해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었다. 이것이 이익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기본적으로 집행위원들은 자기 나라의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2010년 11월 당시 발케 사무총장은 저와 한승주 당시 한국유치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이 문제는 종결됐다”고 밝혔었다. 게다가 이번 조사의 근거가 된 윤리위 규정은 2012년 개정판에 처음 등장했고 2010년에는 규정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반박 때문인지 윤리위는 지난 10월8일 저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 항목은 적용하지 않았다.

제가 8월17일 차기 회장 출마선언을 하기 직전인 7월초부터 캐나다의 밴쿠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FIFA내의 친구들은 윤리위가 저의 출마를 막을 것이라는 귀띔을 해주었다. 출마선언 직후 일부 언론에서 윤리위가 저를 제재할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윤리위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언론에 보도됐다. 아이티 파키스탄 같은 재난을 당한 나라에 기부했던 구호성금마저 조사대상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윤리위 내부의 정보 유출자를 찾아달라고 FIFA 감찰위원회(Disciplinary Committee)에 요청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또 아시아 축구연맹(AFC)이 플라티니지지 서명 양식을 회원국에게 돌리고 이를 FIFA에 제출하도록 권유한 불법행위가 드러나 이를 FIFA 선관위에 고발했으나 선관위 역시 증거가 없다면서 이를 바로 기각했다.

이러한 윤리위의 비윤리적이고 불공정한 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윤리위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기존 15년 제제 요청에 4년을 더 보탰다.

결국 지난 10월8일 윤리위는 당초 문제 삼았던 ‘투표담합’과 GFF 편지 관련 항목은 빼놓은 채 ‘조사비협조’,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6년 제재를 가한 것이다.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재판장이 되어서 심판을 했다.

FIFA 윤리위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다. 뉴욕타임즈는 “FIFA와 ‘윤리’라는 말은 모순”이라고 했는데 그런 FIFA의 윤리위에 명예가 있다는 것 또한 모순이다. 명예훼손은 FIFA가 아니라 제가 당한 것이다. FIFA가 언론에 정보를 흘려가면서 저를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채색하는 동안 저는 벌거벗겨진 채 송곳으로 찔리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FIFA 회장 선거를 앞두고 저를 사람들 앞에 노출시키면서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매도하는 극장 효과(Theatrical Effect)를 낸 것이다.

마치 큰 비리라도 있는 것처럼 문제를 삼기 시작했던 FIFA 윤리위는 조사 근거가 무너지자 조사 과정상의 다른 사소한 것들을 시비 걸어 터무니없는 제재를 가했다.

이제 회장 선거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아직 할 일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FIFA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싸움에 나설 것이다.

그동안 FIFA의 협박 때문에 공개적으로는 지지를 표명하지는 못했지만 사적으로 만날 때마다 제게 성원을 보내면서 격려해주었던 전세계 축구계의 동료들, 언론인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