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개혁과 명예회복 위한 노력 계속할 것

저에 대한 FIFA 소청위원회 (Appeals Committee)의 5년 제재 결정은 실망스럽다.

FIFA 윤리위원회의 심판국은 2015년 10월 저에 대한 1년여에 걸친 조사 끝에 6년간의 제재를 결정한 바 있다. 이번 결정은 이에 대한 항소의 결과다.

FIFA 윤리위원회의 조사국이 저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이유는 2018/202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과정에서 ‘투표담합’ (vote-trading)을 했으며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국제축구기금’ 조성 공약과 관련한 편지를 보냄으로써 ’이익제공으로 보이는 행동‘ (appearance of offering of benefit)을 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이 두 혐의는 정작 윤리위원회의 결정 발표시 제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제재를 가한 근거는 조사 과정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기밀을 누설’했고 ‘태도가 비윤리적이었다’는 그들의 일방적이고 모호한 주장 때문이다. 근거 없는 혐의로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 이 과정에서 결백을 주장하고 윤리위원회의 공격에 논리적으로 대응한 것이 ‘비협조적’(failure to cooperate)이었고 ‘비윤리적인 태도’(unethical attitude)였다는 주장이다. 본질적인 규정위반은 모두 빠지고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한 절차상의 규정위반만 남았다.

이번 소청위 결정에서는 ‘기밀 누설’에 대한 혐의마저 스스로 뺐다. 이제 남은 것은 조사에 대한 ‘비협조’와 ‘비윤리적인 태도’다.

저는 FIFA 윤리위의 조사 초기부터 이 모든 절차가 저의 FIFA 내 활동을 저지하고자 하는 FIFA 내부 특정세력의 비윤리적인 공작에 불과했음을 일관되게 지적해왔다. FIFA의 수뇌부는 저를 늘 눈엣가시처럼 여긴 것으로 생각된다. 저는 1994년 FIFA 부회장 부임 직후부터 FIFA 내부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1995년의 한 국제회의 연설에서 불투명한 FIFA의 TV 방영권 결정과정에 대해 아벨란제 당시 회장을 비판하였고 2002년 ISL 부정사건, 2006년 VISA-MasterCard 사건 등에 대한 블래터 회장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당시 뉴욕 지방 법원 프레스카 판사는 이미 2006년 12월 VISA-MasterCard 판결문에서 FIFA가 ‘거짓말을 했다’ (FIFA lied)라는 말을 13차례나 언급하였고 FIFA의 행태는 당시 FIFA의 구호였던 ‘페어플레이 정신’을 ‘철저히 어기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저는 또한 블래터 회장의 연봉을 공개할 것을 공식 요구한 바도 있다.

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이후 블래터 전 회장의 FIFA가 얼마나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조직이었는지는 미국과 스위스 정부의 공식적인 수사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2015년 미국 상원의 FIFA 부패 관련 청문회에서 블루멘털 상원의원은 “지금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이번 사건은 스포츠계에서 발생한 마피아 스타일의 조직적인 범죄이다. FIFA를 마피아에 비유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단 한가지 이유는 그런 비유가 마피아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피아도 이렇게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부패를 저지르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FIFA에 최소한의 명예가 남아있었다면 FIFA는 이토록 극단적으로 자신을 비판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꼼짝도 못하면서 저의 경우에는 내부인사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었다면서 제재를 가했었다.

저를 조사한 FIFA 윤리위원회내의 조사국과 심판국이 과연 자신들의 주장만큼 독립적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FIFA에서는 블래터가 윤리위원회의 주요인사를 추천하면 총회가 형식적으로 추인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단 한번도 블래터가 지명한 인사가 거부된 적이 없다. 블래터 자신도 인터뷰에서 “지금 윤리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다 거기에 집어 넣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NY Daily, October 28, 2015). 저는 독립된 ‘윤리위원장 추천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면서 윤리위의 독립성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 윤리위원회의 ‘명예를 훼손’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나 형평성의 원칙으로 볼 때 윤리위원회는 블래터 전회장도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마땅하다.

윤리위원회의 심판국장은 제가 윤리위원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면서도 심판국장으로서 자신을 제척하는 대신 제 사건에 대한 판결을 진행하였다. 자신이 연루된 사안에 재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법 상식마저 저버린 행위였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것은 FIFA가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제도와 관행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면 이러한 결정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저에 대한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일은 저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FIFA의 변화와 개혁에 일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CAS) 에 항소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법적인 조치를 강구하겠다.

 

2016.7.6

정 몽 준